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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시스터즈 키퍼 책 원작, 가족의 선택, 자기 결정권

by 리뷰야 닷컴 2025. 12. 28.

오늘은 가족 성장드라마인 마이 시스터즈 키퍼를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이 영화는 백혈병에 걸린 친언니를 살리기 위해 신체기증을 계속해오던 어린 안나가 어느 날 부모님을 고소하게 되면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이 영화는 가족드라마를 뛰어넘는 삶과 생명, 사랑, 그리고 선택의 윤리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오늘은 이번 작품을 마이시스터즈 키퍼 책 원작, 가족의 선택, 자기 결정권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영화에 대해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이 시스터즈 키퍼

마이 시스터즈 키퍼 책 원작

마이 시스터즈 키퍼 책 원작은 조디 피콜트의 동명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입니다. 이 소설책은 출간 당시부터 삶과 생명에 관한 윤리, 그리고 아이의 권리에 대한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었기에 당시에도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작품이었습니다. 소설책에서는 단순히 한 아이의 희생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닌, 가족 각각의 시점을 교차 서술하며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이로써 독자는 안나뿐 아니라 어머니인 사라와 아버지인 브라이언, 백혈병을 앓고 있는 아픈 언니 케이트, 그리고 방황하는 오빠 제시 모두의 내면 깊이 섬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원작 소설은 인물들의 심리 묘사가 영화에서보다 훨씬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인물들 간의 섬세한 내면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영화 내용으로 들어가서 어머니인 사라는 아픈 딸 케이트를 살리기 위해선 그 어떤 방법도 불사하는 인물로 묘사됩니다. 첫째 딸 케이트가 병에 걸려 달리 치료방법이 없어 고민하던 중, 케이트에게 줄기세포, 골수 등 몸에 맞는 것들을 이식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렇게 유전적으로 일치한 아기 또한 시험관 수술을 통해 낳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딸을 살리기 위해 무엇이든 하겠다고 마음먹은 사라는 곧 둘째 딸 안나를 얻게 되고, 안나의 탄생은 오로지 케이트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케이트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내어주게 되고, 언제나 케이트의 치료를 위해 수술과 고통을 감수하게 됩니다. 그러던 중 안나도 어느새 자기 몸에 대한 결정권은 온전히 자신에게 있고, 이를 강요하는 부모님들이 설득이 안되자 유명한 변호사를 찾아가게 됩니다. 변호사에게 이 사실을 전부 말한 뒤, 변호사 또한 안나를 도와 소송을 진행하겠다 말하며 그렇게 안나는 부모님을 상대로 소송을 하게 됩니다. 소송 내용은 안나의 신체에 대한 안나 자신이 결정할 권리를 부모님이 앗아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결국 부모의 이기심에 안나는 말도 안 되는 상처를 받고, 그 상처가 마음속에 어떤 흉터로 남았을지 안타까웠던 대목이었습니다. 영화는 장면들을 통해 안나가 처음엔 자신이 언니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고, 가족이라는 이유로 묵인했지만 시간이 흘러 점점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되고 결국 이런 선택들은 잘못되었음을 이야기합니다. 영화는 이야기의 중심을 안나의 소송과 자기 결정권에 두고, 서사를 보다 직선적으로 전개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인물의 내면 서사는 축소되거나 단순화되었고, 특히 원작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결말은 영화에서 크게 각색되기도 했습니다. 소설의 결말은 독자에게 강한 충격과 논쟁을 남기지만, 영화는 소설보다는 친화적인 방향을 결말로 선택했기에 차이가 좀 있었던 작품이었습니다.

가족의 선택

가족의 선택은 아마 이 영화의 주된 주제 중 하나라 생각됩니다. 영화 속 부모는 백혈병에 걸린 첫째 딸 케이트를 살리기 위해, 유전적으로 완벽하게 맞는 아이를 의도적으로 임신하게 되고, 이렇게 안나는 태어나서부터 자신을 위해 자기 자신이 선택하지도 못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언니를 위한 치료 수단으로 존재하며 골수 채취, 수혈, 각종 의료 시술을 감행하게 되고, 그로써 고통은 시작되게 됩니다. 이런 장면들은 인간의 이기심이 얼마나 무서운지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고, 부모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잔인함 보다는 아이를 간절히 살리고 싶다는 사랑의 잘못된 결과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내 아이가 눈앞에서 아무런 해결방법도 없이 서서히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한다면, 아마 부모 입장에서는 아이를 살리기 위해 그 어떤 가능성에라도 매달릴 수밖에 없었을 것 같습니다. 안나에게는 부모님이 자신의 자유를 앗아가고 원치 않는 양보와 기증들을 강행하는 이들로 비쳤을 수도 있지만, 부모님의 이러한 이기적인 선택들과 행동의 근원에는 딸을 살리고 싶다는 간절함이 자리하고 있었기에 영화는 바로 이 지점에서 부모를 단순히 가해자로만 그리지 않습니다. 이러한 묘사를 통해 영화를 보는 관객들 또한 쉽사리 부모의 선택을 비난하지 못하도록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제일 큰 상처를 받게 된 아이는 안나입니다. 안나에게 가족의 선택은 사랑이 아닌 의무로 다가오게 되었고, 그녀가 느끼기엔 어쩌면 강요와 억압으로 받아들였을 겁니다. 자신의 몸은 온전히 자신의 것이 아니며, 필요할 때마다 언니 케이트에게 제공되어야 하는 자원처럼 취급되었기 때문입니다. 가족이라는 단어는 결국 그녀에겐 보호막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닌, 벗어날 수 없는 굴레가 되어버린 겁니다. 이 영화는 가족의 희생을 미화하지 않고 사실적으로 묘사합니다. 그리고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선택이 또 다른 누군가의 삶을 희생시키는 선택이 과연 정당한 것인지 질문을 던집니다. 가족들의 선택이라는 명목하에 누군가의 고통 위에 세워진 선택들은 아니었는지 관객 스스로 묻고 답하게 만들기 때문에 단순한 가족 영화 그 이상의 깊은 메시지를 담아내고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자기 결정권

자기 결정권 또한 이번 영화의 핵심 주제 중 하나입니다. 어느 날 케이트가 백혈병을 진단받고, 아이를 포기할 수 없었던 부모님은 무엇이든 해보기로 합니다. 하지만 가족 중 그 누구도 골수이식이 가능하지 않았기에 그렇게 오로지 케이트를 살리기 위한 목적으로 안나가 태어나게 됩니다. 이로써 안나는 태어나자마자 아픈 케이트를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하기 위해 모든 걸 내어주어야만 했고, 그렇게 그녀 스스로의 결정권은 가족을 위한 선택이라는 명목하에 사라져 가게 됩니다. 조금씩 차도를 보이던 케이트도 갑작스러운 재발로 인해 결국 안나는 신장까지 케이트에게 이식해주어야 하는 상황이 오게 됩니다. 처음엔 가족을 위한 선택이니 이해하며 지내오던 안나도 어느덧 자신의 선택 없이 강행되는 이러한 선택들에 의구심을 품게 되고, 부모님에게 나도 나 자체로 소중하고 중요하다며 이야기를 해보지만, 부모님은 가족을 위한 일이라며 이전과 같이 강요를 하게 됩니다. 결국 안나는 대화가 되지 않는 부모님을 설득시키기 위해 변호사를 찾아가 자신의 신체 결정권을 위해 부모님을 고소하게 됩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엄마는 변호사를 찾아가 가족을 위한 선택이었으며 안나 또한 동의하에 진행되었다고 말해보지만, 변호사는 5살짜리 꼬마 아이가 11년 동안 8번의 입원과 두 번의 골수 추출, 성장호르몬 주사, 2번의 줄기세포 추출, 6번의 도관 삽입 등을 스스로 받아들였을 리 없다 말하게 되며 서로의 의견은 엇갈리게 됩니다. 이후 케이트에 상황은 더 나빠져 병원 측에선 아이와 남은 시간을 어떻게 함께해야 할지 고민해 보라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던 사라는 아이의 마음은 어떤지 들여다보지 않고 오로지 어떻게든 수술을 시킬 방법만 찾게 됩니다. 변호사와 안나의 상황을 이야기 나누던 장면들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케이트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들여다보지 않고 맹목적인 엄마의 모습에서 이것은 진정 누구를 위한 사랑이고 선택일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죽음도 결국 인생의 한 부분인데 이를 막으려고 계속해서 상처를 주기만 하는 엄마의 모습에서 답답하기도 했습니다. 영화는 보호라는 명목 아래 아이의 의견이 무시될 때, 그것은 과연 보호인지 또 다른 폭력인지 생각하게 만들어 줍니다. 결국 안나의 선택은 가족을 파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수단이었습니다. 영화는 자기 결정권이란 개념을 가족, 사랑, 희생이라는 복잡한 감정 속에 놓아버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존중되어야 할 가치임을 명백히 말해줍니다. 가족과 삶이란 주제로 이야기하는 이번 영화는 답답하지만, 각 개인의 시점에서 의도를 알 수 있기에 복잡하면서도 안타까운 작품이었습니다. 이 작품을 보신다면 제대로 된 사랑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선택에는 어떤 책임이 따르는지를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작품으로 깊은 여운을 선사해 줄 것입니다.